맨위로가기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은 1966년 8월 7일, 해병대 장교와 공군 장교 간의 폭행 사건으로 시작되어, 해병대가 김해 공군비행학교를 기습한 사건이다. 부산발 진해행 버스에서 해병대 장교들이 공군 장교들을 폭행한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공군 장교들이 해병대 장교들을 구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해병대 장교 129명이 공군비행학교를 기습하여 폭행을 가하고, 전투기를 파손하는 등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해병대 이의일 소위가 익사하고, 양측에서 39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국방부는 관련자들을 처벌하려 했으나, 남북 대치 상황과 베트남 전쟁 참전 등의 이유로 18명만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이 사건은 해병문학에서 공군을 해병대의 라이벌로 묘사하는 등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2. 사건의 발단

1966년 8월 7일, 부산경상남도 진해행 마지막 버스에서 사건의 발단이 된 충돌이 발생했다. 김해 비행학교 인근 정류장에서 술에 취한 해병대 장교 8명이 버스에 탑승하려던 공군 장교 3명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2] 당시 해병대 장교들은 해병학교 35기 보수교육 중 외박 나온 소위들이었고, 공군 장교들은 비행학교의 조종 피교육생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공군 장교들이 즉각 보복에 나서, 군용 트럭으로 해병대 장교들이 탄 버스를 추격하여 웅천에서 붙잡아 폭행하였다.[3] 이 연쇄적인 폭행 사건은 양측의 감정을 격화시켜, 이후 해병대의 공군비행학교 습격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2. 1. 해병대 장교들의 공군 장교 폭행

1966년 8월 7일, 부산에서 진해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김해 비행학교 후문 근처 덕두정유소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사건이 시작되었다. 버스 안에 있던 술에 취한 해병대 장교 8명이 버스에 타려던 공군 장교 3명을 막아섰다. 이 해병대 장교들은 해병학교 35기 기초군사반 과정에서 보수교육을 받던 중 1박 2일 외박을 나온 소위들이었고, 공군 장교들은 비행학교에서 조종 교육을 받던 피교육 학생들이었다.[2]

공군 장교 3명이 제지에도 불구하고 버스 뒷문으로 탑승하자, 해병대 장교 8명은 버스 안에서 이들을 폭행하고 버스 밖으로 내쫓았다. 이 버스 안에서의 폭행 사건이 이후 벌어질 대규모 충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2]

2. 2. 공군 장교들의 보복 폭행

마침 버스 앞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공군 상병이 비행학교의 정성규 소위 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에 격분한 공군 장교 16명은 보복을 위해 군용 트럭으로 해병대 장교들이 탄 버스를 추격했다. 이들은 웅천에서 버스를 세운 뒤, 해병대 장교들을 버스 밖으로 끌어내 마구 구타하였다.[3]

3. 해병대의 공군 비행학교 기습

이전 버스에서의 폭행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해병학교로 복귀한 해병 장교들은 전도봉 소위(연세대 졸)의 주도 하에 129명이 모여 새벽에 김해의 공군비행학교를 기습했다.[3] 이들은 정문 보초 헌병을 납치하고 조종교육생 내무반을 습격하여 공군 장교들을 폭행했으며, 주번사령 이양호 대위에게 전날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3]

이양호 대위는 사과 요구를 거부하고 비상소집을 발령하여 약 300명의 공군 장병이 모여 해병대원들에게 역습했다. 수적 열세로 밀린 해병들은 퇴각하면서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돌멩이 등으로 비행기를 파손했다. 담장과 철조망을 넘어 도주하는 과정에서 이의일 소위(경희대 졸)가 철조망 밖 에 빠져 익사했다.[3]

3. 1. 기습 준비 과정

공군 장교들에게 폭행을 당한 해병대 장교들은 해병학교로 복귀한 뒤 동료 해병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3] 이에 공군에게 보복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전도봉 해병 소위(연세대 졸업)의 주도 아래 해병 장교 129명이 모여 김해의 공군비행학교를 새벽에 기습하기로 계획했다.[3]

3. 2. 기습 및 폭력 사태 발생

공군 장교들에게 폭행당한 해병대 장교들은 해병학교로 복귀한 뒤 이 사실을 동료 해병들에게 알렸고, 이에 격분한 해병 장교들은 공군에게 보복하기로 결정했다. 전도봉 해병 소위(연세대 졸)의 주도 하에 해병 장교 129명이 모여 새벽에 김해의 공군비행학교에 도착하여 기습을 감행했다.[3]

해병들은 학교 정문 보초를 서던 공군 헌병을 납치해 권총을 빼앗고, 조종교육학생이 있는 내무반으로 안내하라고 위협했다. 새벽 5시 50분경, 조종교육 피교육생용 내무반에 도착한 해병들은 자고 있던 공군 조종교육생 장교들을 마구 폭행했다. 이들은 공군 주번사령이었던 이양호 대위에게 전날 해병 장교들이 폭행당한 사건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3]

그러나 이양호 대위는 이 요구에 응하지 않고, 즉시 교내 방송을 통해 비행학교 장병들에게 연병장으로 비상소집할 것을 긴급히 명령했다. 이에 공군 비행학교 소속 장교 및 사병 3백여 명이 모여 해병대원들에게 역습을 가했다. 수적으로 불리해진 해병들은 결국 패싸움에서 밀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가던 해병들은 추격하는 공군들에게 더 이상 쫓아오면 비행기를 파손하겠다고 위협했고, 실제로 공군들이 계속 추격하자 돌멩이와 연장 등을 던져 비행기들을 파손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해병들은 결국 담장과 철조망을 넘어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이의일 해병 소위(경희대 졸)가 철조망 밖 에 빠져 익사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3]

이 충돌로 인해 공군 내무반 3개소의 유리창 31장이 깨지고,[3] 비행기 두 대가 파손되었으며, 양측에서 사망자 1명(해병 소위 이의일)과 중상자 39명이 발생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2]

3. 3. 이의일 해병 소위 익사 사건

공군 비행학교를 습격했던 해병대 장교들은 공군 장병들의 역습에 밀려 퇴각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해병들은 담장과 철조망을 넘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이의일 해병 소위(경희대학교 졸업)가 철조망 밖에 있던 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3]

4. 사건의 결과 및 영향

이 충돌 과정에서 공군 내무반 3개소의 유리창 31장이 깨졌고,[3] 해병대가 도주하면서 위협하고 실제로 돌멩이와 연장 등을 던져 비행기 두 대가 파손되었다.[2][3] 이 사건으로 양측에서 총 39명의 중상자가 발생했으며,[2] 도주하던 이의일 해병 소위(경희대 졸)가 부대 담장과 철조망을 넘다가 철조망 밖 에 빠져 익사하면서 1명의 사망자가 나왔다.[3]

4. 1. 국방부의 대응 및 사건 종결

국방부는 처음에는 패싸움에 가담한 군인들을 모두 파면하고 처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4]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고, 월남전 파병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장교 한 명 한 명이 중요했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입장을 바꾸었다.[4] 결국 국방부는 해병대와 공군을 합쳐 관련자 18명만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4] 또한, 싸움의 당사자였던 공군 비행학교와 해병학교는 자매결연을 맺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4]

4. 2. 이후의 이야기

사건 당시 공군비행학교 주번사령이었던 이양호 대위는 훗날 국방부 장관이 되었고, 사건의 주동자였던 전도봉 소위해병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도봉 소위(당시 해군간부 35기)는 이 사건으로 인해 현역 부적합 전역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 해병간부 38기로 다시 지원하여 해병대 소위로 재임관했고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5.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이 사건으로 인해 해병문학에서는 공군해병대의 라이벌로 등장한다.

참조

[1] 문장
[2] 뉴스 군인들의 패싸움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12-05-12
[3] 뉴스 포복奇襲 實戰방불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12-05-12
[4] 뉴스 두 학교 자매 결연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2016-01-3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